저는 마흔한 살로 미용 계통에 종사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강사입니다. 그 일은 몇년 전, 추석 다음 날이었어요. 해외로 보낼 물건이 있어서 인천 공항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저녁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그 날따라 고속도로에 차는 한 대도 없었고 무서울 만큼 주변이 깜깜하 게 느껴졌어요.
운서IC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차선을 변경하려는데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났지 뭡니까.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겪는 통증에 순간 너무 놀라서 아프다는 생각보다 ‘이게 뭐지?’ 싶더라고요.
뻣뻣하게 굳어져 가는 오른쪽 다리가 액셀 위에서 웅 소리를 내며 제 의지와 상관없이 페달을 밟아버렸고 저는 ‘속수무책! 사고다! 이제 난 죽는구나!’ 막막함과 두려움에 핸들을 꼭 움켜쥐며 눈을 감았는데 몇 초 정도의 찰나였을까요.
눈을 질끈 감았는데도 이상하게 눈앞에 아주 밝은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면서 소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 쾅! 그게 그날 도로 위에서의 제 마지막 기억입니다.
눈을 떠보니 제 몸을 감싸고 있는 건 하얀 붕대. 병원이었어요. 꼼짝할 수 없이 미라처럼 둘둘 감겨있더군요. 눈을 깜박거릴 기운조차 없었습니다. 여기가 어디지? 설마 내가 죽은 건가? 하는 순간, 엄청난 통증이 쓰나미처럼 밀려왔고 잠시 후, 다시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것 처럼 눈을 떴을 때 저는 제가 기적적으로 살아서 병원에 와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여러 번의 수술과 골절로 침대에 누워 있기만 여러 달. 신체적 아픔이 끝나고 나니까 이번에는 경찰서에 가야 했어요. 아픈 다리를 휠체어에 맡긴 채 조사를 받으러 나간 ‘교통사고 경찰조사 강력계’. 처음 가본 곳에서 지은 죄도 없는데 심장이 쿨렁쿨렁하더군요.
그때 한없이 부드럽게 생긴 어느 경찰관 한 분이 저를 알아보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셨어요. 그렇게 시작된 조사 아닌 조사. 여러 장의 서류와 CCTV 화면 등을 쭉 보고 읽으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날 저에게는 더없이 감사한 생명의 은인 ‘천사 같은 분’의 도움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사고 당일, 불행 중 다행으로 통행 차량이 거의 없었던 그 도로 위에서 저는 알 수 없는 오른쪽 다리 마비로 사고가 났고 이후 의식불명으로 30분가량 사고 차량에 쓰러져 있었는데 지나가던 택시기사님께서 저를 보시고 보조석 발판 안에 처박힌 저를 꺼내서 호흡 확인 후 119구조대에 신고. 병원 도착해서 수술방에 들어갈 때까지 출동한 경찰과119대원들에게 제 안부를 물으면서 함께 계셔 주셨다고 합니다.
정말 너무 고마운 마음에 눈물까지 맺히더라구요. 근데 여기서 감동하나 더! 제가 당연히 그분에게 은혜를 갚으려고 연락처를 물었는데요. 그 기사님이 공개하는 걸 원치 않으신다고,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경찰분들도 알려줄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대신 저의 감사 인사만 전해주시겠다 해서 아쉬운 마음으로 경찰서를 나왔습니다.
저는 여러 번의 수술을 받았고 앞으로도 평생 재활치료를 이어가야 하지만 아직도 믿기지 않는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했던 저를 살려 주신 그 이름 모를 택시기사님과 경찰관분들 그리고 119구조대 여러분을 생각하면서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세상엔 공짜가 없거늘 어찌 생명을 공짜로 살 수 있겠어요. 저 또한 천운으로 다시 얻은 삶, 남을 돕고 봉사하면서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