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의 연이은 사별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런 시련에는 누구도 쉽게 이겨내기 힘들 것 같습니다.
80~90년대 큰 인기를 누린 유명 연예인이 이러한 시련을 맞아 방송 활동까지 중단했다고 하는데요. 게다가 그는 세상을 떠난 동생의 두 아이를 입양해 키운다고 전해져 화제가 되었습니다.
동생부터 아버지, 남편을 연이어 떠나보낸 슬픔에 공황장애까지 왔지만 동생의 입양한 아이들을 보며 슬픔을 극복했다고 합니다.
가난한 집안의 맏딸로 태어나..
양수경은 뛰어난 가창력은 물론 청순함과 섹시함을 겸비한 미녀 가수로 90년대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 및 국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양수경은 강수지, 김완선과 함께 당대를 대표한 톱스타 여가수였는데요.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바라볼 수 없는 그대’, ‘그대는’등을 히트시키며 가요톱텐 5주 이상 1위를 하는 등 상당한 인기를 구가한 양수경은 1990년대 말 남편과 결혼을 발표한 뒤 내조하는 삶을 살며 가수활동을 잠정 중단하게 됩니다.
활동을 중단한지 20년만인 2016년 양수경은 KBS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사랑은 창밖에 빗물같아요’를 부르며 방송에 복귀를 했는데요.
복귀와 함께 그동안 방송활동을 할 수 없었던 사연을 고백하며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아버지 동생 남편까지 세상을 떠나자…
생선가게 딸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양수경은 돈때문에 가수라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양수경은 “엄청 가난했다. 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엄마한테 늘 ‘내가 가수해서 집 사줄게’라고 했다. 어렸을 때 ‘나는 가수가 되어야 돼. 그것도 그냥 가수가 아닌 스타가 되어야 돼’라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는데요.
이후 톱스타가 된 양수경은 맏딸로서 집안의 모든 생계를 책임 졌다고 합니다.
양수경은 “돈 벌면 부모님 다 가져다 드리고 동생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도 제 책임 같았다. 당연히 맏이가 해야한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았지만 그녀에게는 여러차례 시련이 닥쳐옵니다.
아버지를 여읜 후 얼마지 않아 여동생, 남편을 차례로 하늘나라로 보내는 슬픈 일을 겪은 것입니다.
게다가 남편이 남긴 2억여원의 빚까지 대신 갚아야했던 양수경은 “좀 무서운 시절이 있었다. 동굴까지 갔다와서 여기가 끝인가 했는데 끝이 또 있고 또 있고 또 있더라. 10년째였다. 나처럼 누군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누구라도 나처럼만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의 아픔을 떠올렸습니다.
양수경은 빚을 갚으면서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의 두 아이를 거둬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사실을 밝혔는데요.
양수경은 “자녀가 셋이다. 제가 낳은 아이는 하나고, 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 키운 내 조카 둘이다”라며 “양수경이 숨겨놓은 아이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혼자 세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공황장애를 앓았다. 방황하고 힘들어 한 저를 지켜 준 건 아이들”이라며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이어 “부모로서 아이들이 힘들 때 제가 옆에 없었던 게 미안하다. 건강하게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털어놓으며 “큰 아이는 요리를 하고 있고, 둘째는 대학을 다니고 막내는 음악 쪽 일을 한다”며 아이들 자랑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양수경은 “세상이 무서운 시절이 있었다. 동굴까지 가서 여기가 끝인가 했는데 또 끝이 있는 느낌이었다. ‘나처럼 누군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누구라도 나처럼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올해부터는 봄바람이 살살 기분 좋게 불 듯이 저에게도 계속 좋은 소식이 오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본인조차 힘든 와중에 조카들까지 입양해 키운 그녀의 크고 따듯한 마음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녀의 바람처럼 좋은 소식만 들을 수 있는 앞으로가 되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