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라는 거미줄 앞에 하루살이 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부부에게 그날은 더욱 힘든 하루였습니다.
“여보 어떡해…”
오늘 수술 못하면 수정이가 죽는데…”
“………..”
“어떻게든 해봐…”
눈 한번 감았다 뜨니 빈하늘만 남은 아내의 통곡어린 비수가 남편의 가슴을 뚫고 지나갑니다.
어린 딸의 고통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자신의 비참함이 아내의 말보다 더욱 그를 힘들게 했습니다.
지나는 바람 한 점 주머니에 담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며 병실 문을 나선 남자가 갈 수 있는데라고는 동네 허름한 식당.
그저 아픔의 시간 안에서 혼자 외로이 견뎌내는 슬픈 원망 앞에는 소주 한 병과 깍두기 한 접시가 놓여 있었습니다.
착찹한 마음으로 술을 마신 남자가 어둠이 누운 거리를 헤매 돌다 담배 한 갑을 사려고 멈춰 선 곳은 불 꺼진 가게 앞.
술김에 문 손잡이를 당겼더니 문이 열리고 맙니다. 두리번거리던 남자의 눈에 달빛에 비친 금고가 눈에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여보 어떻게든 해봐…”
아내의 부서진 말이 그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무엇인가 홀린 듯 금고문을 열고 정신없이 주머니에 닥치는 대로 주워 담고 있을 때 어디선가 자신을 바라보는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는 순간 백발의 할머니 한분이 서 계신 것이었습니다.
할머니의 등장에 이내 정신을 차린 남자는 죄송함과 수치심에 주머니에 담았던 돈을 금고에 다시 옮겨 놓고 있었습니다.
그때 말없이 다가선 할머니의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 나왔습니다.
“잔돈푼을 가져다 어디 쓰려고…무슨 딱한 사정이 있어 보이는데 그 이유나 한번 들어봄세…”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오열하는 남자에게
“말 안 해도 알겠네 오죽 힘들었으면… 힘내게살다 보면 뜻하지 않는 일들이생기는 게 인생 아니겠나”
할머니는 남자의 손에 준비한 듯 무언가를 손에 쥐어줍니다.
“부족하겠지만 우선 이걸루 급한 불은 꺼질 걸세”
가게문을 나서 저만치 걸어가는 남자가 어둠 속에 서있는 할머니를 자꾸만 뒤돌아 보면서 울먹이고 있을 때.
“열심히 살아”
그러면 또 좋은 날 올 거야…”
라고 말이 들려 왔습니다.
할머니가 왜 자신에 이런 친절을 베풀었는지 그는 이유를 생각해 볼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저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안도감만이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려앉혀 주고 있었습니다.
똑같은 가을이 세 번 바뀌어 가던 어느 날 할머니 집 가게 문을 열고 한 남자가 들어섭니다.
“어서 오세요 뭘 드릴까요”
라며 말하는 젊은 여자는 외면한 채 두리번 거리기만 하던 남자가
“저어,, 여기 혹시 할머니…
“아 저의 어머니 찾으시는군요…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얼마후 물어물어 남자가 찾아간 곳은 할머니가 묻히신 산소였습니다.
“할머니께서 빌려주신 돈 잘 쓰고 돌려 드렸습니다. 그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라며
통탄의 눈물을 흘리던 남자에 눈에 묘비에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람은 감사와 나눔으로 인생을 만들어 나간다]
사계절이 두어 번 오고 간 후. 해맑은 하늘에, 사랑비가 간간히 뿌려지는 날 오후.
공원에 작은 푸드트럭 한 대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무료급식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밥은 남편이
국은 아내가
반찬은 딸이…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트럭 지붕 맨 꼭대기에 깃발 하나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습니다.
그 깃발에는
“사람은 감사와 나눔으로 인생을 만들어 나간다”
라고 적혀져 있었습니다.